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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Feb 22' Mental that one, me.

  • Writer: Jeong Hanna Raphaela Heo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26, 2022
  • 7 min read


오늘 먹은 것, 아침에 먹고 나간 소고기와 호박, 버섯 & 허브 볶음. 하루 종일 쫄쫄 굶을 줄 알았다면 뭘 더 챙겨먹고 나갈 걸 그랬지만 집에 와서 그런 생각 싹 달아났다. 요리에 진심인 우리 아빠, 고기에 핏물 빼고 감자 깎고 우거지 삶고 그 모든 누군가는 귀찮아 할 과정들을 거쳐 감자탕을 한 솥단지 끓여 놓았다. 너무 맛있고 너무 행복했다. 역시 우리 집 요리의 치트키는 할머니의 된장이다. 우리 집은 고추장보다도 된장이 진짜 훌륭하다. 어쨌든, 감사히 감자탕을 먹었다.


먹다가 문득 '와, 감자탕 진짜 오랜만에 먹네.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더라?'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생각이 스쳤다. 지지난 번 감자탕을 먹었을 때 그는 아팠고, 집 앞에서 감자탕 먹다가 또 몸이 안 좋아져서 허겁지겁 다시 집에 가서 아픈 그를 돌봐줬었다. 지난 번 감자탕을 먹었을 때는 가을-초겨울이었고, 퇴근 후 감자탕에 쏘맥까지 하고도 즐거워서 카페거리에 걸어가 테라스 석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치즈케익까지 먹었더랬다.


가끔 진짜 멍청하고 덜떨어진 선택을 할 때가 있지만, 나란 사람은 정말 가끔 남들에 비해 훨씬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오늘 저 기억을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가 하면, 그와 나의 시간을 추억하는 일이 내게 전보다는 확실히 덜 아파졌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떠오르는 예쁜 추억을 가슴아파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때에도 피하지 않았고, 최대한 덜 피하려고 했다. 굳이 떠오르는 아픈 생각도 접지 않았고, 다시 떠오르는 잔상에 아파할 만큼 아파하고 매일 울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핸드폰 가득 남은 그와의 추억을 굳이 시간 들여 정리하지도 않았다, 모두 고스란히 남아있다. 새로 폰을 바꾸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로 묻히겠거니.


'내 마음'으로만 '생각'을 움직이려 했다면 다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내 마음으로 생각을 조종하는 것, 나한테는 너무 tempting한 유혹이다. 왜냐?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감정에 +/-변수로 작용할 확률이 굉장히 높거든. 아픈 기억, 너무 예뻐서 떠올리면 아픈 추억, 내 마음은 사실 그 잔상들을 너무나 피하고 싶었지. 내 무의식이 그 기억을 이따금씩 다시 불러오는 일을 멈춰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하지만 절대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했다. 핸드폰을 굳이 정리하지도, 그가 떠오를 만한 물건이나 intangible한 것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내 기억이든 눈 앞에서든 치우지 않은 것도, 다 같은 맥락에서의 노력이었다.


내 아기, 우리 부비를 떠나 보내면서 얻게 된 현명함이자 강함이다. 부비를 떠나보낸 직후에는 집에 혼자 있기가 너무 힘들고 아파서 부비가 떠오르는 모든 물건과 사진, 생각들까지, 눈 앞에서 그리고 머릿 속에서 치우려 노력했다. 심지어는 부비 냄새가 나는 물건들은 모조리 장이나 서랍 속에 넣어버리고 빨래를 했어. 사물은 보이지 않는 한 켠, 생각은 무의식의 한 켠, 부비의 냄새까지 묻어보려고, 내 생각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내고 싶었고 그렇게 해보았어.


그렇게 몇일을 지내다 깨닫게 되었었다, '아, 사물이, 냄새가, 내 생각이,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부비를 떠올리는 게 하는 게 아니구나. 부비는 그저 내게 공기같이 늘 나의 *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는 예쁜 나의 사랑이구나' 하고 말이다. 물건을 치운다고, 생각을 피한다고, 그런다고 떠오르지 않는 부비가 아니었다. 치우려 노력을 해도 아프고 힘든건 비슷했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런 나의 액션은 사실 부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속상한 일이다. 내가 별나라로 떠났을 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싶을까?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잖아. 난 절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싶지 않다. 똑같다. 부비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유일한 우주, 자기의 엄마인 내가, 자기가 떠나고 나니까 자꾸 자기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그 때 정말 육성으로 "아 씨발 진짜 나란 년은 진짜 존나 못되고 이기적이네 진짜" 했다. 내가 너무 싫었다.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그런 액션들로 인해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혀지고 싶지 않았을 부비는 하늘에서도 얼마나 속상하고 애타게 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책임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비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반드시 내가 사랑하는 그 누가 날 떠나더라도, 그게 내게 얼마나 아픈 일이더라도, 기억을 억누르지 않고, 더 선명하게 기억하려 노력하고 , 어느 시공간엔가 존재했던 그 누군가를 혹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며 추억하겠다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기억의 끈을 붙잡고 붙잡아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기억은 세월이 야속하듯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게 아니라면 최대한 오래 오래 추억하고 기억 하겠다고 말이다.


그런 다짐의 일환이다. 나와 그, 과거에 존재했던 '그 때의 우리', 그 모두를 추억하는 일. 기억을 억누르거나 피하지 않는 일들 말이다. 난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 잊혀지고 싶지 않다. 당장은 아픈 기억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예쁘고 아름다웠던 원형만 남기를 바라고, 내 마음에도 그렇기를 바라고, 모든 사랑하는 대상에게 동일하게 갖는 마음이다. 이 간단한 로직을 깨달은 비교적 쉽고 빠르게 나는 현명했고, 지혜롭고,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똑똑하다. 실행하는 데에는 뼈 깎는 고통이 드는 이 로직을 '실천'하는 나는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고, 그래서 결국 언젠가 무지개 미래에 선 나는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 보다 훨씬 강한 사람일 거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내가 똑같은 treatment를 받고싶기 때문에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것일 수 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동인이겠다. 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나의 옛 연인, 나의 오랜 친구들, 그 중 누군가의 기억에서 조차 지워지기 싫다. 만약 내가 그를 떠나더라도 말이다. 지워진다고 해도 원망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정말 마음 아프고 속상하겠지.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놓아지는 게 아니라 묻고 묻고 치우고 치우려 하면 너무 마음 찢어질 거야. 그러니까 결국 이런 내 노력은, 큰 관점에서 보면 그들도 나를 위해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된 거다. 결국 이것도 내 이기심의 긍정적인 발현일 뿐인거지.


'감자탕'이라는 이 하찮은 대상 하나가 이 모든 생각의 시발이 되고 가지를 뻗힌 거다. 이런 생각의 가지를 뻗치면서 하루를 살아내면 정말 기진맥진 하다. 밤이 되면 차분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밖에선 에너지를 발산하되 집에 오면 꼭 에너지를 수렴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암튼 가끔 보면 난 진짜 RESPECT 할만 한 똑띠네 싶다가도 어떨 때 보면 진짜 멍청이 천치가 따로 없다. 일관되게 살기 거 참 힘드네. 일단 이게 이 일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오늘은 정말이지 한 일이 많고 할 이야기가 많다. 당일에 이 모든 내용을 다 옮겨놓지 않으면 내일은 절대 생생하게 담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26일 새벽 4:18, 졸려 죽겠는 이 밤에 글을 계속 끄적여 본다.


24일 저녁 20:45경 밖에서 산책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받은 연락, Talent Acquisition 관련된 일이었다. 24일 저녁 20:45에 요청받아 25일 오후 14:30 미팅이라니 너무 급작스럽고 촉박하다 싶기도 했지만 익숙한 자리였기에 흔쾌히 수락하고 준비했다. 이미 생각하던 영유의 옵션들이 있었기에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뭐 쉬는 김에 하는 조그마한 일들인데 조금 여유 있게 옵션들을 둘러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뭐 있어, 월급 일수가 줄어드는 것 빼고 없겠지.' 정도의 생각이었다.


나는 진짜 문법만을 묻는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개판인데 (정말 개판이라 개판이라 쓴다...) 그 외 독해, 구문독해, Writing, Speaking, Listening 영역은 잘 한다. 하는 건 어느정도 잘 하는데 특히 독해는 내가 문제들을 쉽고 효과적이게 푸는 데에 익숙해서 그런지 풀이가 진짜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것 같다. 2022년 수능 영어 오답률 3위, 21번 문제를 준비했다. 이렇게 풀이하는 강사 정말 처음 봤다면서 낯선데 사실 너무 쉽고 쏙쏙 들어와서 너무 좋은 강의인 것 같다는 평을 받았고 뿌듯했다.


갑자기 뜬금 없지만 나는 내가 언제 뿌듯해 하는지 오늘의 예시를 통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못했다, 기대 이하다' 한 일에 대해서는 남들이 칭찬을 한대도 뿌듯함이 없다, 창피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스스로 '오우... 좀 했는데-shietttt :P' 라고 느낄 때 남들이 아주 조오그음- 의 칭찬이라도 하면 "FUCK YEAH, I'M A BAD BITCH HUSTLIN' HARD" 한다. 할렘 영어 발음 정확도 아주 높게 그대로 mimic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수준. (ㅋㅋㅋ)


저 문제에서 FUCK YEAH 한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I DON'T GIVE A FUCK이 됐다. (ㅋㅋㅋ) 학원에서 즉석에서 던져주고 풀라는 문제 4개를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서 시강하는 거였는데, 4개중에 문법 문제 1개를 아예 절었다. 근데 절었단 사실이 내 마음에 하나도 동요를 주지 못했다. '그거 잘 하든 못 하든 뭐가 중요해? 내가 강의 준비를 안할 사람이 아닌데' 의 마음이었던 거지. Momsy가 묻더라, "그건 너만 아는거지, 그 사람들이 네가 준비를 할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아? 잘 하지 그랬어."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고 하잖아, 나는 하나를 제대로 조졌고, 그래서 뭐 준비되지 않은 1 문제 전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내가 그들 중 하나였다면 분명 내게 남은 여덟을 기대했을 거야." 엄마는 말했다, "That's my girl."


늘 그렇듯 오늘의 정확한 결과와 나의 옵션, 수치, 결과들은 정말 최측근들만 안다. 앞으로도 최측근만 알게 될 거다. So far 현애, 아빠, the 'unni' I love the most, not my blood one, meh. :P, 돌보미 of me these days, and my bestie.


오랜만에 목동을 갔다. 안양천 벚꽃 길, 곧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거고 사람들은 넘쳐날 거다. 올 봄, 저 길을 거닐 내 마음은 어떠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산책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기관지 염증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기관지 염증은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매일 힘드네 거 참...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정-말 심한데 그 영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내게는 하늘이 뿌얀 정도 보다도 내 눈의 뻑뻑함과 내 목 상태가 더 빠르게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준다. 하필 몸도 안좋은데 미세먼지 맞으며 너무 많은 일들 한다고 고생했네.


심지어 오늘 아빠가 날씨 따뜻하다고 해서 반팔에 롱스커트, 얇은 코트에 얇은 목도리 하나 하나 하고 나왔드만 바람 겁나게 불어서 춥더라... 따흑. 내일은 설상가상 비까지 온다니, OMG. 계절이 다가올 때 내가 으레 하는 일을 했다. 엄마 매장에 가서 옷 털어오기 (ㅋㅋㅋ). 얇고 숏해서 너무 귀여운 봄 코트 2개, 색이 진짜 예쁘게 빠진 니트 몇개에다가 진짜 예쁘게 빠진 스트레잇 진을 갖고 돌아왔다.


진을 하나라도 득템해서 다행이야... 그렇게 좋아하던 나의 반유광 블랙진, 옆트임 있는 연청, 핫한부분만 골라서 찢긴 destroyed 진, 다 찢겨 없어졌다. 응급실에 드나들면서 다 찢긴 건데, 응급실에서는 옷을 다 가위로 잘라서 버린다. 내가 너무 좋아하던 그레이 워싱 맨투맨과 내가 아끼던 니트들도 몇 개 다 버려졌어. 바지를 잃은 건 정말 속상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바지 사기가 정말 어렵거든... 허리에 맞추면 허벅지가 끼고, 허벅지에 맞추면 허리가 남고, 그렇지 않으면 밑위가 너무 짧고, 이래 저래 참 바지 사기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천으로 된 배기바지 사는 거 너무 좋아한다. 편하고, 일단 사는데에 노동과 고민이 굉장히 적게 들어. 오늘 가져온 내 오묘한 색 뿜어내는 귀여운 숏 코트가 제일 맘에 들고, 오늘 가장 행복했던 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어떤 여자에게 줄 코트를 백화점 돌며 고르고 사서 카드와 함께 선물한 것.


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 않게, 때로는 그보다도 더하게 나를 가족으로 여기고 챙기는 누군가가 내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 서있다는 건 정말 인생의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느님께서 내게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들을, 내 곁으로 늘 보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고 감사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나의 관계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늘 똑같다. 상대에 대한 내 감사함이 하루 하루 커지는 것 이상으로 상대에게 베풀 수 있기를, 늘 더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러길 바란다.


사람이 생을 살 때 사랑과 따스함을 알려주는 사람이 곁에 몇이나 될까? 잘은 몰라도 내 주변에는 내게 사랑과 따스함을 알려주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내가 그 마음을 기꺼이 소화하지 못해서 나의 부족함이 내 스스로를 발목잡던 때가 있어도, 사랑과 따스함을 '못'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해. 감사한 삶 아니야? 다시 한 번, 배가 부른 사람이네 싶다.


새벽 5시가 다 되어간다. 나는 새벽 7시 반에 꼭* 일어나야 한다. 2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제외하면 또 1시간 반쯤 자겠지. 1.5시간 자고 내일을 살아내고 나면, 난 72시간 동안 고작 5.5시간 잔 사람이 된다. 이번 주는 불면이 날 죽였다. 다음 주는 숙면이 날 살려주길 바라며, 힘을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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