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ICK: 소생 3번, 입원 2달
- Jeong Hanna Raphaela Heo

- Jan 30, 2022
- 6 min read
Updated: Feb 7, 2022

제목 그대로다. 세 번을 죽음 앞에 이르렀고, 초진이 틀려 예기치도 못한 7시간 넘는 수술을 거치고도 살아났다. 결과적으로 세 번을 소생했고, 두 달 동안 입원했으며, 여기 아직 아픈 내가 남아있다. 이 모든 일은 2021년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해는 내게 전반적으로 힘든 해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내게 최고의 행복과 최악의 시련 모두를 안겨 주었다.
스무살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다. 열심히 달렸고, 달렸고, 또 달렸다. 참 열심히도 살았더랬다. 하지만 나에게 일은 늘 더 큰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었고 '성공' 혹은 '명예'와 같은 건 내게 한 번도 목적이었던 적이 없다. 열심히 산 그 시간이 대체 무얼 위함이었나 하면 윤택한 생존, 자유의지의 실현, 궁극적으로는 그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따뜻한 삶'을 위함이었다.
'따스함', 그건 대체 뭐길래 나는 이리도 집착하는 걸까. 오랜 시간 내게 따스함이 가지는 의미를 정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차가움이 없는 삶이라고 말하면 쉬우려나. 깔끔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만 따스한 삶 안에는 사랑이 많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며, 온기가 가득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나에게 '사랑'은 꽤나 무조건적이고 무한하며 온기 가득한 마음, 그 표현을 의미한다. 그런 사랑을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과 주고 받는 삶이 아마도 내게 따스한 삶일 것 같고, 그게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다. '고작 그게 삶의 목적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 따뜻한 삶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직까지 나는 정말 따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거의 못 봤다.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주고싶은 사랑 보다는 받는 상대의 마음에 '내가 받고있는 이 큰 마음이 바로 사랑이구나…’ 하고 입력되는 따스한 사랑을 주고 싶다. 그 능력을 참 가지고 싶지만, 아직 그저 부족한 나다.
아무튼 내게 진정한 사랑이란 무조건적인 마음을 끊임 없이 퍼주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내 삶으로 들이지 못한다.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친구들에게 마음을 주고 애정을 주는 건 내 기준에서의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내 사랑의 기준과 정의가 엄격한 것이라서 친구들은 보통 내 마음을 사랑으로 받아 들인다, 다행인 일이지. 이렇듯, 사랑이란 내게 참 고차원 적인 감정이다.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데미지가 정말 큰 건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관계에서 호구란 소리 듣기 십상이고 오늘도 20년차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오는 길이다.
오늘 가연이를 만났는데 가연이가 그러는 거다, "내가 항상 희원이에게 (가연이 동생) 얘기하는 게 있는데, 저러다 쟤(=나, 정이) 언젠가 와르르 무너져서 몇 달 잠수타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아버리는 날 온다." 그리고 가연이는 그 날이 언제가 될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 그러지 않았냐, 몇 달째 삶으로의 복귀를 못하고 있지 않냐, 하고 말했다. 가연이는 아직 한참 멀었단다. 내 마음에 '미움'과 '증오'가 없는 까닭이라고 한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것 해본 적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 아니네. 내가 싫어하는 한 가족이 있다.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도 증오하는 마음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의 삶이 다시는 엮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 외에는 정말 누구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네. 착한 척 하고 그러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나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가연이가 물었다. "아니 왜? 나는 진짜 머릿 속 육하원칙을 따졌을 때 이성적으로 싫어할 만 하면 미워할 수 있고 증오도 해. 넌 진짜 그게 왜 안될까?" 그러게, 난 왜 그런 게 안될까...? 결국 다 같은 사람 사는 세상인데, 이해 하려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용서란 마음에 방 한 칸만 내어주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용서는 참 쉽다. 누구도 용서하지 못하는 아픈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어렵지.
가연이는 내가 언젠가 와르르 무너지고 나면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될 거라고 한다. 나는 지금 이상으로 와르르 무너질 일도 없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인데, 언젠가 우리는 그 답을 알게 될 거다.
내가 살고싶은 따뜻한 삶에는 미움과 증오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이해, 따뜻함, 너그러움, 그런 것들이 있다. 친구들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늘 너무 힘든 거라고 말한다. 가연이도, 다희도, 수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한다. 내가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니 결국 나의 모든 아픔이 내 스스로에게 가시가 되어 돌아온단 것이다. 그게 날 fragile하고 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고 한다. 다희는 이런 날 보고 천사라고 하는 유일한 친구인데 사실 나머지 친구들은 나를 호구- 라고 부른다. (ㅋㅋㅋ) 내 최측근들은 항상 나에 대해 그런 걱정을 한다. 듣다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2021년이 힘들었던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삶이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1월부터 4월까지는 내가 '내가 나중에 애를 낳는다면 이만큼 사랑하지 않을까...?'싶을 만큼 사랑했던 부비가 너무 아팠고, 아픈 부비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결국 부비는 날 떠났다. 삶이 차가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할머니, 할머니가 많이 아파지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또 한 번 나의 삶은 차가워질 테니까. 그리고 나서는 가족. 엄마, 언니, 언니의 최측근, 아빠, 내 네 명의 가족과의 관계에서 차가운 일들이 하나씩 쌓였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다섯번째 가족과도 안녕을 말했다. 그렇게 한 해에 걸쳐 내 삶은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는데 내가 날 잘 돌보지 못했다. 내 세상이 무너질 때에 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누구의 문제도 아닌 나의 문제다. 나는 세상이 주는 다양한 시련과 고난은 정말 신기하리 만큼 잘 견딘다. 그냥 견디는 걸 넘어 선물이자 감사함으로 여기기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 신기해 할 정도다. 멘탈 나갈 법한 상황에서 정신줄 똑띠 붙들고 하나씩 해결할 줄 안다. 그런 건 내게 쉬운 일이다. 그렇듯 난 세상이 주는 시련에 있어서는 많은 트레이닝을 거쳤고 정말 강인한 사람인데,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시련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와르르 무너진다.
내게 일어난 사고도 사고이지만,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 왜냐,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따스함인데 내 세상이 정말 얼음장처럼 얼어 붙어 무너졌고 다시 따스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따스함 없이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데, 내가 내 삶에 대해 아쉬운 게 뭐가 남았지?' 하고 말이다. 아쉬운 게 없었다. 정말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쉬운 게 없다. 퍽 행복한 삶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해봤고, 일도 원하는 만큼 빡세게 달리며 해봤고, 다양한 경험도 해봤고, 삶에 남은 미션이 없단 생각이다.
내가 사랑하는 다섯 명의 가족을 생각하면 아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너무 사랑함에도 아쉬운 게 없었다. 왜냐면 나는 다섯 명의 가족 모두에게 정말 충실했고, 내가 가진 모든 사랑을 쏟아 주었고, 너무나 잘 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얼어붙는 순간까지도 나보다는 그들에게 너무나 잘 했던 만큼 아쉬움이 없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들에게 원망받거나 미움받지 않을 정도로 잘 했다는 생각이었다. 내 죽음 앞에 그들의 미움과 원망이 놓인다면 그건 나에게 fair한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에도 의지가 별로 없었다. 소생실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 수술이 가능한 상태가 되기를 기다렸고, 응급 수술이었기 때문에 정규 수술이 다 끝날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의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일까, 가벼운 수술로 최대 1시간 걸린다고 했던 수술은 알고 보니 상태가 훨씬 심각해서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벼운 수술인 줄 알고 들여 보냈는데 위독하다고 하니 엄마 아빠는 애가 탔다고 한다.
중요한 혈관을 건드리지는 않은 줄 알았다는데, 열어보니 경동맥이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경동맥이 끊기면 죽는 건데 찢어져 있었고, 혹시라도 처치가 잘못 되었거나 낙상이라도 했다거나 수술이 더 지체되었다면 높은 확률로 죽었을 수 있다고 한다. 수술 이후에는 회진 도는 의사 선생님들, 외래 가면 만나는 의사 선생님들 모두 "저 세상 갈 뻔 했어요", "진짜 너무 다행이에요 정말 죽을 뻔 했어요" 이런 말 뿐이었다.
수술 후 얼마 동안은 거울도 보지 못했다. 내가 충격 받을까봐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 처음 머리를 감을 수 있기까지도 1주가 걸렸다. 그 전까지는 베갯닛에 갈색으로 굳은 피 가루가 계속 떨어졌고 내게서 피 냄새가 났다. 1주 쯤 지났을 무렵 거울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때도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사람이 이렇게 부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부은 얼굴,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걸 넘어 실밥에다 스테이플러 심까지 엄청 많이 박혀있는 목, 나의 몸 상태, 모든 게 충격이었다. 차가워진 삶, 아픈 나, 또 한번 버티기 어려웠다.
11월 부터 1월에 퇴원할 때 까지 이래 저래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여전히 난 살아있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사실 몸은 잘 회복중이다. 마음도 처음 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살아야 할 이유' 보다는 '죽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희망적인 건 내가 치료를 잘 받고 있다는 것, 외과와 혈액내과 선생님은 수술 예후가 정말 좋다고 한 것이다. 또 정신과 선생님은 내가 놀라우리 만큼 '정신과적인 마음'이라는 걸 크게 갖고 있는 데다가 큰 일을 겪은 후 진행하는 치료가 잘 되고 있어서 이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내 마음이 다시 아파질 일은, 발랄하던 사람이 살면서 어느 날 우울증에 걸릴 확률보다도 훨씬 낮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래 저래 좋은 것 뿐이네.
나는 아직 아프고, 두 달의 입원을 하고 퇴원했음에도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아직 대부분의 밤에 울고,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자기 어렵지만, 그래도 차차 건강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Jeong은 미소를 찾으려 노력하며 건강 회복을 위해 병원에 꼬박 꼬박 다니는 중이고, Hanna 버전의 나는 억지로라도 친구들을 만나고 사회로 돌아가려는 노력 중이고, Raphaela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너무 fragile해지기 쉬우니 그 외의 steady한 무언가에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 노력 중이다. 나의 다양한 모습은 한 팀이 되어 열심히 합심 중이다.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했을 때는 사람 된 도리로 노력을 할 만큼 해봐야 하잖아.
죽을 고비를 세 차례나 넘길 수 있던 데에는 무언가 큰 뜻과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당에 가게 된 것도, 수녀님이 교리반 50명 학생 중 유독 나를 챙기시고 예뻐하시는 것도, 수녀원에 초대해서 기도시간을 함께 보내고 심지어는 내가 수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씀 하시는 것도, 내가 하느님께 믿음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세례명을 정하려 열어본 사이트에서도 '치유'의 천사 'Raphaela'를 처음 바로 보게 된 것도, 나와 너와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다 그 뜻과 의미가 있을 거야.
수녀님은 늘 내게 성모님이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말씀 하시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하늘에서 날 정말 어여삐 생각하여 지켜주시고 끝 없는 선물을 주시는 것 같고, 내게 무언가의 소명을 주시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마저 든다. 믿음이 없던 내가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만큼 나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계속 목숨을 부지한다. "넌 정말 천사같아"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많다. ‘정말 난 천사같은 사람일까?'하고 생각 해 보았다. ‘혹시 하느님이 내가 이 땅에서 주변 사람들의 천사로 살게 만들고 싶어 하시나? 내게 무언가의 소명이 있는 걸까...?‘와 같은 생각.
무엇이 되었든, 어차피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고 모두를 애정할 삶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요즘이다. 내 목숨을 자꾸 붙들어 주시는 건, 내 사랑의 범위를 더 넓히고 내가 좀 더 좋은 영향을 주며 살기를 바라시는 마음 때문일 거야. 그래서 매일 조금씩 더 노력한다. 아픈 내가 먼저 치유 되어야 너의 치유를 도울 수 있으니까.
이렇게 내 다섯 번째 삶은 시작 되었고, 이 삶의 끝이 어디로 닿을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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