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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에서의 인연 1: 서수민

  • Writer: Jeong Hanna Raphaela Heo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9, 2022
  • 5 min read

Updated: Feb 11, 2022



올 해 17살의 수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입원을 했다고 한다. 이번 입원이 거의 여섯 번 째, 올해만 세 번째 입원을 했다는 아이. 수민이는 이 곳 병동에서 "자살하고 싶어요", "자해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달고 산다. 굉장히 아이러니 하게도 수민이는 하는 말과는 달리 꽤 밝고 활달해서 병동 안 간호사 선생님들의 이름도 다 외며 장난을 치는 아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서스럼 없이 다가간다.


수민이는 나를 좋아한다. '언니'라고 생각하고 의지할 만한 유일한 대상인가 보다. 내게 안아달라고 하고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느낄 즈음 왜 죽고싶은지 수민이에게 물었는데 (마음 아픈 친구들이 많은 이 곳에서는 꽤 자연스러운 대화다) 수민이는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수민이가 내게 마음을 열지 못해서 말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우울함의 이유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친구였다.


나는 'Why?'를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묻는 게 정말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수민이가 신기하면서도 한 편 걱정이 되었다. 이유 모를 고독과 우울이야 말로 답을 찾기 어려운 것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 않을까, 살아갈 힘이 없지 않을까 싶더라.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이 아이는 벌써부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겠고 행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다. 나는 나도 힘든 입장에 이 곳에서 동생들의 징징거림을 받아줄 여유가 없어서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뭘 묻더라도 답하지 않는데, 수민이는 왠지 자꾸 눈에 밟혀서 신경쓰며 마음을 주게 되었다.


수민이와 얘기를 하다 이 아이의 가족사를 가볍게 듣게 되었다. 수민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수민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다. 이 아이가 우울한 이유와 관련이 있겠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게 수민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다만 힘들고 외로웠겠다 해주었다. 말 하고 싶고 내게 기대고 싶은 거라면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겠지.


그리고 며칠 후, 수민이의 입원 3일차 밤인 어제,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 한 얘기를 나누다가 수민이는 사연에 대해 입을 떼었다. "언니, 내가 엄마 왜 돌아가셨는지 얘기 했나?" 라는 말로 수민이는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다. 너무 극적이고, 또 너무 비극적이어서 믿기 어려웠다.


때는 수민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5월 5일 어린이날 밤이다. 수민이네와 친구 가족이 함께 모여 아이들은 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고, 어른들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 후, 수민이네 부모님은 이미 만취한 상태에서 두 분만 다시 술 마시러 나가셨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부모님은 싸우셨고, 귀가 할 때 까지 그 싸움은 이어졌나 보다. 집에서도 계속 오갔던 고성에 수민이 동생이 깨어 울면서 수민이를 깨웠다고 한다.


수민이가 기억하는 건 자신이 우는 동생을 달랬던 것, 수민이 어머니가 현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줘!!!" 하고 소리친 것, 수민이가 나가서 문을 열어주려고 하니 아빠가 소리 치며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수민이 어머니는 옥상에 올라가시게 되었고 비틀비틀 거리는 상태에서 추락사 하셨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는 수민이는 덤덤하고 초연했다. 드라마보다 드라마같은 일 아닌가? 하필 어린이 날, 하필 부부 싸움을, 하필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들어온 후에... 너무 비극적이잖아. 나는 환자이지만 동시에 미래에는 상담자 혹은 심리 관련된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덤덤한 수민이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시작했다.


"수민아, 넌 어떨 때 힘든 것 같아?", "힘든 감정을 보통 어떤 식으로 달래거나 소화해?", "극단적인 생각은 왜 들어?", "힘든 감정이 어떤 때에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여러 질문을 했지만 헛수고였다. 오랜 시간 상담을 받았지만 수민이는 본인이 힘들어 하는 일들의 공통점 조차 찾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어머니의 부재'와 '그 날의 일'에서 생긴 무언가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하는 추측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민이는 큰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큰 소리를 들으면 공황이 오고, 서랍을 조금 세게 닫으면 나는 그 소리에도 크게 놀랐다. 싸우는 소리에는 정말 병적인 반응을 보였다. 병동 내에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싸운 적이 있는데, 그 소리가 들렸을 때에 난 밖에 있었다. 문득 수민이가 걱정돼서 병실에 들어와 보니 애가 정말 넋이 나간 상태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 팔을 다 긁어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수민이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저 어리고 맑은 아이가...' 수민이가 몸에 더 상처내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고, 간호사들이 있는 데스크로 끌고 갔다. 수민이는 집중 관찰실에 갇혀 안정을 찾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수민이가 나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했다. 사실 병동 안에서는 동성 및 이성 모두와 신체 접촉을 해서는 안되는데, 수민이는 정말 따스함과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이 주는 따스함을 필요로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가볍게 안아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수민아, 너는 뭘 할 때 즐거워? 뭘 좋아해?" 하고 물었다. 수민이는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고, 조금 고민한 후에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고, 더 고민하다가는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밖에서는 사고가 불가할 만큼 힘들어지는 순간이 잦다고 한다. 병동 생활은 밝게 잘 하는 걸 보면 어쩌면 수민이에게 필요한 건 24/7 함께 있으면서 늘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따스한 관심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걸 필요로 하는게 아닐까 하고 물었더니 곰곰히 생각해보고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클루를 하나 찾은 것 같다며 고맙다고 했다.


11월 까지는 웹드라마와 단편영화 촬영을 하느라 바빴고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촬영장에서 지냈는데 이번 달에는 사람 만날 일이 없어 더 외롭기도 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 해 주었다. 혹시나 스스로 너무 자책할까 봐.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아픈 일인데, 시작은 더 어렵다. 나도 어렸을 때 부터 오랜 시간 스스로를 훈련 시켜야만 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수민이는 자취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이유를 물었다. 가족들을 보면 의지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엄마 생각이 날 때가 너무 많아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민아 넌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아...?"하고 말이다. 수민이는 아빠가 밉다고 했다. 자기에게 소리치며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던 아빠의 모습,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소리지르며 싸우던 모습, 술에 취한 그 모습, 모든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얘기를 아빠와 나눠본 적 있어?" 나눠본 적 없다고 한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빠가 밉다는 말을 하지 못했단다. 수민이는 '밉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내가 질문할 때 사용하지 않은 단어고 수민이가 아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표현된 단어였다, 미움. 이런 저런 이유로 수민이의 세상이 답답하고, 공허하며, 쓸쓸할 것 같았다. 내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수민이는 나와 대화를 나누며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주치의 선생님과는 잘 나누는지 물으니 하는 얘기도 있고 하지 않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더 많은 얘기를 선생님과 나누면 좋겠다 말해주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내 생각에는 수민이가 아빠에게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얘기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 이 아이의 아픈 마음이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설령 수민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고 속상하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어른이자 부모라면 응당 견뎌야 하는 고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누고 어느정도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수민이의 아픔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의 치유는 그 때 비로소 시작되겠지.


이제는 수민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수민이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을 "죽고싶어요" 혹은 "자해하고 싶어요" 라는 표현을 통해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수민이 곁에서 상처 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 만져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이 밝은 아이의 상처가 아물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린 수민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을 일이다. 사실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지. 보통의 아이들에게는 행복하기만 할 어린이 날이 수민이에게는 고통의 날이자 사랑하는 엄마의 기일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열 한살 때 부터 열 일곱 살 때 까지 무려 6년을 견디며 살았네. "네가 나보다 낫다" 얘기 해 주었다.


"언니는 네가 정말 정말 행복하길 바라. 그리고 인생은 길게 보면 결국 fair하기 때문에 너는 나중에 정말 큰 행복을 누릴 거야."라고 말했다. 내 코가 석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 생각을 잘 파헤칠 수 있고, 이런 저런 trial도 할 수 있고, 그에 필요한 노력을 들일 수 있는 성인이잖아. 또 다시 수민이를 꼭 안아줬다.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수민이는 그렇게 내게 안겨 이십 여 분을 목 놓아 울었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수민아,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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