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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ec 21' 입원일기 6: 결핍, 의지

  • Writer: Jeong Hanna Raphaela Heo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7, 2022
  • 4 min read

Updated: Feb 8, 2022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뭐 늘 6시에 기상이지만, 일어나고 나서 좀 피곤해서 잠을 더 잤다. 요즘 매일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는데 살이 쪄서 걱정이다. 간식을 좀, 밖에서는 잘 먹지도 않았는데 여기에선 정해진 시간에만 꺼내 먹을 수 있다보니 파블로프의 개 처럼 간식시간에 반응한다. 7-8키로 빠졌던 게 무색할 만큼 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 암튼 살 쪘다.


이 곳의 일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10에는 밥을 먹는다. 8:30에는 오전 투약을 하고 9시에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 11:50에는 점심을 먹고, 12:30에는 점심 투약. 17:30에는 저녁을 먹고, 19:00에는 간식 시간. 20:30에는 저녁 투약을 한다. 21:00에는 펜이나 모든 집기들을 반납하고 22:00에는 소등을 한다. 하루 하루 시간이 안가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일과를 보내다 보면 금방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면담을 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내가 많이 나아진 것 같다면서 교수님, 그리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혹시 퇴원 얘기인가 하고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좀 안정을 찾은 것 같으니 통화 제한을 푸는 것에 대해 얘기 해 본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평균 입원이 1달이 넘는다고 하는데, 벌써 퇴원을 말할 리가. 시무룩 해졌다. 쩡무룩.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몸의 상처도 마음의 상처도 말이다. 2-3주 후에는 퇴원할 수 있을까? 오늘 엑스레이를 또 찍은 걸 보면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기대를 접고 있어야 시간이 빠르게 갈 것 같다.


오늘 엑스레이 찍은 이유는 배의 상처에 문제가 있어서다. 배의 상처들이 많이 딱딱해지고 뭉쳐서 혹시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하는 것 같다. 크게 심하지 않다며 바이오 본드로 붙여 놓았었는데 뭔가 예상과는 다른 증상이 나타난 건가 보다.


문득 이 곳, 대학병원의 검사비는 얼마나 비쌀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 입원비는 지난 1달 여 동안 차곡차곡 쌓였겠지? 보험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거다. 모두 미래의 내가 해결 하겠지. 미래의 내가 잘 해내기를 부탁한다.


하루 종일 많은 걸 했는데 아직도 수요일이다. 지금은 20:45, 저녁이다. 조금 전 저녁 투약을 했는데 또 다시 약이 바뀌어 있었다. 지난 한 주 동안 같은 약을 먹은 날이 거의 없다. 다양하게 약을 써 보면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증상에 따라 투약량을 증감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차도를 보면서 내게 잘 맞는 약을 찾게 되면 약의 변동 없이 정착할 거라고 하더라.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지만 약의 갯수가 좀 줄어들면 좋겠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각각 8알 씩은 먹는 것 같다.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간이나 몸이 아파지진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먹인다.


조금씩 깨닫고 인정중인 사실이 있다. 이 세상에는 결국 나 말고는 내게 무조건 적인 어깨를 내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 어디엔가는 그런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없이 산다면 내가 더 행복할거란 것. 보통 부모님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고 하는데 나는 부모님에게 잘 의지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안 좋은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배울 점이 많고 마음씨가 아주 너그러운, 의로운, 성실한, 따스한, 그런 분들이다. 다만 내가 '무조건적인' 내 편이라고 느껴본 적 없어서, 혹은 너무 오랜 시간을 떨어져 보내서, 내가 익숙치 않아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난 부모님께 기대지 못한다. 신기하지,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 참 많았는데, 나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걸까?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을 믿기에 잘 버티면서 살고, 찰나와 같은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긍정하며, 그렇게 살은 것 같다.


부모님이 무조건적인 내 편이라고 느껴보지 못한 이유는 이렇다. 사람이란 본디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우리 부모님은 내게 엄격한 사랑을 주려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조건 내 편을 들지 않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에 의해 내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 편을 들지 않았다. 그런 엄격한 사랑을 받았기에 내가 가진 좋은 면도 참 많지만, 부작용으로는 기대지 못하는 사람으로 큰 것 같다. 이 게 바로 나의 결핍이다. 의지하지 못하는 것.


반대급부인 건지 나는 한 번 내 가족이며 내 사람이다 생각하면 정말이지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 지지, 그런 걸 준다. 타인과 나의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에 설사 내 사람이 명백히 잘못했다 해도 나무라지 않는다. 보통 누구의 편을 들 상황에서는 그 상황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고통스러운데 나까지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고통을 더 얹어줄 수 없잖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해를 해 보고, 그 이의 앞에서 절대 다른 사람의 편을 들지 않는다. 사람이 대단하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실수 할 수 있잖아.


그런 바탕으로 내가 가지게 된 원칙이다. 그가 설령 크게 잘못한 상황에도 예외는 없다. 나무라지 않고, 대신 상황을 빠르게 타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에 대해 아쉬운 점이나 꼭 알려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모든 상황이 다 종료된 후 얘기를 꺼낸다. 어떤 점은 노력해 보자고 말해주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열심히 돕는 것, 그런 게 가족 된 의리이고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해 보자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방이 먼저 얘기한다. 스스로 잘못했음을 알고, 상대가 내 잘못이란 걸 알텐데도 그의 편을 들어줄 때, 그는 그런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건 사실 인지상정이다. 내가 잘못한 상황에 누가 날 지지해준다면 사람이 염치가 있고서야 아마 다들 그럴 거다.


세상에는 날 judge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judge 당하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내가 잘못한 일이더라도 이미 고통스러울 마음에 내 가족에게도 judge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에는 정말이지 외면당하는 느낌이고 사는 게 외롭고 쓰다. 홀로인 기분인 거야.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외롭게 만들지 않을 거다. 힘든 날에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외롭지 않게, 인생이 쓰다고 느끼지 않게, 그럼에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그렇게 현명하게 도와줄 거다. 내 아이에게도 그렇고 말이야.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울타리이자 따스함이다.


내가 가진 결핍이라면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나.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불안해 하더라. 사실 여태껏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 없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시작할 때 스스로 엄청 불안해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안다. 난 내가 마음을 주고 의지하는 무언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크단 걸. 누굴 잃었고 무엇이 내게서 사라져서 이렇게 된거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한 편 안다. 내가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줄 수 있는 건, 내가 그런 결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결핍을 인지하며, 따라서 '내 가족에게는' 혹은 '내 아이에게는' 등의 다짐을 한다. 내가 받은 무언가 보다 더 나은 것 혹은 내가 받지 못한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되는 것, 그런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힘든 날에도, 그가 잘못한 날에도, 함께하는 삶이 퍽퍽할 때에도, 어떤 이는 손을 놓아버릴 상황에서도, 나는 나의 가족을 절대 외롭게 하지 않을 거야. 잘 버틸 수 있게, 견딜 수 있게, 옆에서 끊임 없는 사랑을 줄 거다. 그게 나의 신조다.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내게 가정이 생겼을 때 나에게도 그런 사랑을 주는 남편이 있다면 참 좋겠다. 사는 게 참 복잡하고 어렵잖아. 뜻대로 흘러가는 인생도 아니며, 나 혼자만 사는 인생도 아니다. 관계가 존재하는 삶을 잘 살려면 이토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단 사실이 좀 힘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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