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Dec 21' 입원일기 4: 많은 역할
-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2, 2022
- 2 min read
Updated: Feb 8, 2022

아침에 일어나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교수님이 회진 오셔서 또 다른 짧은 면담도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가족들과 나의 관계에 대해 많이 물었다. 그리고 주말 동안 어떤 생각들을 하며 지냈는지 물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 않고 내 삶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그게 아직 어렵다 했다. 너무 많은 역할을 극소수에게 주었다. 내가 나에게 참 중요하지만 나만 중요하고 내가 그저 최우선 순위가 되는 삶은 살기 어렵다. 익숙치 않으며 그게 사실이다.
생각한 게 있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지 않는 것. 너무 많은 나를 내어주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건만 나라는 사람은 그게 불가하니 차선을 택한 거다. 내가 두 발을 땅에 딛는 것만 중요한 삶. 그런 것 애초에 가능한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천천히 생각하기로 해. 당장은 그냥 내가 미래라는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나와 얘기를 나눴던 의과대학생 선생님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본인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그저 하루 하루를 산다는 장성훈 의과생, 환자들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의사가 된다면 좋겠다는 김동현 의과생. 너무 힘들어서 행복하지 않으며 2주 후에 레지를 관둘 거라는 오덕균 의사 선생님. 다들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재밌기도 하고 느끼는 점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이 곳의 사람들과도 조금씩 친해지는 중인데 친구가 되어가는 게 되게 신기하다. 모두가 서로 조심스럽고 나는 훨씬 더 조심스럽다. 장성훈 선생님과 또 다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동력과 목적이 전혀 없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 있으니 산다고 말하는 사람. 매일 자신이 실패작임을 느낀다는 사람.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가 되려고 생각 중인데 그것도 사실 좋아하고 관심 있어서라기 보다는 본인이 겪어온 아픔이 있으니 다른 의사들보다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인 것 같다고 한다.
여전히 나의 이야기를 묻고 듣기 보다는 내게 상담을 받는 사람. 본인도 멋쩍어 한다. "제가 들어드려야 하는데 늘 오면 제 얘기만 하게 되네요." 그러게, 그렇네요. 오늘도 어떤 하루인지 모르겠는 하루가 흘렀다. 나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