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4 Dec 21' 입원일기 3: 아픈 희재

  • Writer: Jeong Hanna Raphaela Heo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1, 2022
  • 4 min read

Updated: Feb 8, 2022



오늘은 토요일이고 여기 온지 3일차다. 부종 있다고 얘기 했다가 계속해서 피수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어제 집중 관찰실에 하루 종일 갇혀있었고, CT도 또 찍고 몸에 계속 모니터를 꼽아 놨었다. 너무 불편했다, 답답하고.


오늘 오전에는 잠을 좀 푹 잤다. 어제 밤 10시쯤 부터 오늘 새벽 6시까지 자고, 아침 먹고 또 자서 11시쯤 일어났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깼는데, 병원에서는 자다가 2시 전에 깨면 추가 수면제를 준다. 어제 중간에 깨서 추가 수면제를 먹어서 몽롱한 상태로 오전 내내 뻗어 있었다. 그렇게라도 쉬어서 다행이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깼는데 어린 애들 둘이 싸운 모양이었다. 여자애는 나랑 같은 방을 쓰는 예은이 (내게 편지를 써주었던 아이) 였고 남자애는 아마 태원인가 하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듯한 애였다. 암튼 그래서 둘을 분리 시켜놓아야 하는데 처치실에는 이미 다른 할아버지 환자가 분리되어 있는 상태였고, 집중 관찰실에는 내가 모니터 꼽고 누워있고, 분리시킬 공간이 없다며 나를 일반병실로 옮겨줬다. 내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집중 관찰실에 모니터 꼽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건 정말 고통이었거든.


엄빠가 간식을 사다주었다. 빵도 먹고 과자도 먹었다. 엄마 아빠가 삶의 의지를 잃은 애가 과자는 또 먹는다고 웃기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무것도 안 먹던 애가 그래도 뭐라도 먹으니 좋아하지 않을까?


외상외과에 입원했을 때 까지는 밥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누워만 있어서 한달 동안 7-8kg이 빠졌는데, 여기 오니까 밥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다 먹을 때 까지 못 일어나게 한다. 밖에서도 세 끼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안 먹다가 이렇게 먹으니 급속도로 살이 찌는 것 같다. 운동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빠진 8키로를 오로지 지방으로만 다 채우게 되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


오늘은 머리를 감았다. 병원에 온 이후로 제대로 머리를 감거나 씻어본 적이 거의 없다. 몸 여기 저기에 드레싱을 해놔서 물이 닿으면 안되기도 했고, 머리는 목 수술 때 묻은 듯한 피에 덮인 채 굳어 있어서 몇 번을 감아도 피 냄새가 났다. 오늘은 드레싱 다 푸른 후에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았는데 정말 시원했다. 샤워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 있다니.


이 곳에서 가장 친해진 건 설아 언니다. 참 희한하지,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중인데 정말이지 기구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설아언니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룸 노래방에서 매니저이자 실장 일을 하다가 들어 왔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보도(?)인지 도보(?) 인지 뭔가 한다고 했는데 처음 듣는 직업들이라 생소하고 신기했다. 나와는 절대 겹치지 않을 세계. 바깥 세상에서라면 절대 엮이지 않았을 듯한 사람이라 흥미로웠다.


설아 언니와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설아언니는 힘들 때 나를 가장 먼저 놓는 사람은 미래에 어떤 상황에도 나를 가장 먼저 놓을 거라 했다. 그도 힘들테니 연락하지 말고 네 마음에 잘 간직하라고 했다. 얼굴은 예쁘게 생겨서 다쳤다면서 속상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한 100번은 말했다. 싫다고 100번 대답했다. 아직 내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수 있을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고 일단 단 한 톨의 마음도 회복되지 않았으니, 사랑을 줄 수 있는 내가 돌아오기는 할런지도 모르겠으니...


이제는 마음이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를 만큼 마음 아픈 게 그냥 기본 값이 되어버린 상태다. 마음이 '공'하다. 떠올리면 눈물 나지만 생각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별 생각 없으려, 태연하려 노력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립고 슬프고 미안하지만 이 감정이 아픈 감정이라고 인정하기 싫을 때도 있고. 나는 내 감정의 미묘한 변화들을 굉장히 잘 인식하고 빠르게 조절하고 회복할 줄 아는 회복탄력성 있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 하나도 안 된다. 그저 어렵기만 하다.


심지어 요즘은 아픈 생각이 나면 피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엄청 마주하는 편인데도 요즘은 피하더라. 함께 하기로 했던 무언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들, 이를테면 유럽여행을 떠나는 티비 프로. 행복한 제주여행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들, 함께 했던 시간을 상기하는 것들, 이를테면 노래, 특정 사람, 특정 음식 등... 티비에서 스파이더맨과 매트릭스 예고편이 나올 때에도 마음이 그렇게 쓰리다.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 정말 '헉'하고 숨이 멈춘다. 헉 하고 숨이 멈추고 과호흡이 올 때면 눈물이 절로 난다.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되나보다.


나만 이런 걸까...? 내 생각 나면 하나씩 다 피하려나...? 열심히 지우고, 비우고, 또 지우고, 좋았던 기억들도 하나씩 지워가며 잊으려나...? 날 너무 슬프게 만드는 생각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또한 내 탓이고 내 잘못이고 내 부족함이라서 사실 할 말이 없다. 남 탓하며 살기 참 어렵다.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자면 못 찾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 속에서 나름의 변호를 해본다. '그런데 나의 2021년은 너무 힘들었고, 나의 따스함이 하나씩 사라졌고, 나의 마지막 남은 따스함까지 사라졌고, 따스함은 내 인생의 전부를 걸 만큼 소중한 것이었어... 내가 너무 힘들었어...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아니, 달리 할 수 있던 것들이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고통의 굴레에 먹히고 만다.


난 상처 외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그런 사람일 뿐일까. 혹시 그런 생각따윈 하지도 않을 만큼 날 이미 지웠을까. 괜찮아지긴 했을까, 괜찮아져야 하는데. 참 슬프고 아픈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바람이 있다면 하나, 날 잊지 않고 추억해 주었으면 하는 거다. 좋은 기억들을 머릿 속에 기억에 예쁘게 남겨주는 것,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젊은 날 가장 순수한 사랑을 나눈 그런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 너무 큰 바람인가.


내가 힘든 것 보다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최측근, 이렇게 편지와 메세지를 받았던 내 다섯 명의 가족은 나보다 더 힘들까? 정말 그럴까? 나만큼 힘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리고 제발 기도한다. 내 생각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씩 하며 보고싶어 해주기를 바란다. 꿈 많고 당차고 따스했던 그 여자를, 그 동생을, 그 아이를,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오늘도 '희재'를 들었다. 어쩐지 행복하다 했다. 하나씩 차가워지던 내 삶에 다시금 온기가 찾아와 따스해 지려나 했다. 평생 누구에게도 의지해본 적 없는 내가 의지라는 것 해볼 수 있게 되려나 했다. 가사가 딱 맞다. 이런 사랑, 이런 행복, 이런 웃음, 이런 축복, 내게 쉽게 올 리 없다. 정말, 아직 눈물조차 닦지 못한 나다. 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Comments


+82-10-2393-0890

SOMEWHERE IN BANPO, SEOUL, KR

  • Facebook
  • Twitter
  • LinkedIn

©2022 by Jeong Hanna Raphaela Heo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