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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ec 21' 입원일기 1: 쓰러진 날

  • Writer: Jeong Hanna Raphaela Heo
    Jeong Hanna Raphaela Heo
  • Feb 1, 2022
  • 3 min read

Updated: Feb 8, 2022



오늘 면담을 했다. 중증 외상외과에서 정신건강 의학과로 넘어온 첫 날이다. 아직 외과적인 수술 및 치료가 남아 있지만 우선 죽을 고비는 넘겼기에 당장은 외과 진료보다 정신건강 의학과 내 진료가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 했다고 한다. 병동이 옮겨졌고, 앞으로 외과 선생님들이 직접 내 병동으로 회진을 오실 거라고 한다.


왠진 모르겠는데 머리가 아프다. 혈압과 혈액 내 헤모 수치가 낮아서인지 머리가 띵한 느낌이다. 일어나다 쓰러져서 몇 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보호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날 들어다 병실에 눕혀놓은 상태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고 한다. 치사량에 다다를 만큼의 혈액을 잃었다는데도 목숨을 부지했다. 하늘에 계신 누군가는 자꾸 날 살리신다. 걸어다니기가 어렵다. 전화 제한이 되었고 아무와도 통화할 수 없다.


방금은 보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게 추운지 물었다. 내가 병실 앞 의자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있어서 그랬나 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도 하고 프로그램 참여도 하라고 하셨다. 난 그러기가 싫다. 왜냐하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토록 사람을 좋아하던 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좀 싫어진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이 이렇게 아파졌단 사실도 힘들고, 머릿 속에 남은 차가운 잔상들도 힘들고, 이어지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괴롭기도 하고. 홀로 감정과 생각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방금은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는 왜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지, 일기 쓰고 있었던 건지 물었다. 그리고 아직 건강 회복이 안 되었으니 또 쓰러질 수 있다고 병실에 들어가서 누워 있으라고 했다. 마냥 누워만 있으면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걸 병원 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산책도 하고 싶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마시고 싶다.


방금은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집중관찰 셀에 홀로 갇혔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 까지 혼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를 봐주시는 중증 외상외과 선생님, 최낙준 교수님이 코로나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온 이후, 벌써 몇 번째 하는 코로나 검사인지 모르겠다. 사실 검사야 받으면 되는데 코로나까지 걸리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이미 충분히 아픈 몸인데 코로나 치료까지 받아야 한다면 너무 불공평 하잖아. 밖에서는 아무리 사람을 만나도 코로나의 위험에 조차 놓인 적이 없는데... 검사 받으러 병원 갔다가 오히려 감염되어 온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너무 그립다. 난 누구를, 무엇을 사랑한 걸까?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리운 걸까 내가 그리운 걸까? 너와 함께이던 내가 그리운 걸까 아니면 나와 함께이던 네가 그리운 걸까? 어렵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미안하고 쓰린 마음이지만 그래도 보고싶어. 보고싶은 마음이 없을 수 없잖아, 그런 마음 쯤 가질 수 있는 거잖아.


장성훈, 의과 대학생으로 실습중이라는 분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덩그러니 앉아있는 내게 와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했다. 나의 얘기가 궁금하다던 그 대학생은 어느새 본인의 이야기를 내게 쏟아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와 힘든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무언가의 에너지가 있나보다. 익숙하고 흔한 일이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었다. 본인 스스로는 본인을 실패작이라 여긴다고 했다. 본인의 여자친구는 양극성 장애, 본인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성장기 내내 견뎌야 했던 부모님의 압박, 그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를 쓸모 없는 인간이라 여기게 되는 강박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라 느낄 때면 손톱을 뜯어내며 자해를 했다고 말했다. 해를 가할 때 죽고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아녔겠지, 큰 해를 가한 게 아니니까. 정말 죽고싶었다면 손톱을 물어뜯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피를 봤겠지, 수술도 했겠지, 몸과 마음에 엄청 큰 상처가 남았겠지...


그의 부모님은 심지어 추후 그의 장래에 문제가 될까 싶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가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이후이고,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는 증상이 많이 괜찮아졌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매일 하루 하루를 사는 목적은 없다고 했다.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거라 한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 간다. 의대에 진학한 이후로는 모두 다 공부로는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뿐이라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워서 또 다시 본인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했다. 휴학도 해 보고, 상담도 오랜 시간 다니며 노력 중이지만 아직 어렵다는 얘길 내게 조심스럽게 했다. 그리고 어떤 전문의가 되고 싶은지,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등, 묻지 않았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내게 꺼내 놓았다.


나는 의사야 말로 엄청난 3D 직업이라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이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만 봐도 그렇다. 고통스러운 6년의 수련을 견뎌야 하고, 게다가 그 이후 무소속으로 인턴/레지 생활을 5년은 해야 전문의가 될 수 있으며, 그 기간동안 상처 드레싱 부터 온갖 잡일 하며 밤을 새기 일쑤고, 2-3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대화를 나눈 이 학생이 좋고 착한 사람일 수 있겠으나 좋은 의사가 되지는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강도 높은 훈련은 소명의식이 없다면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마지 못해 억지로 하는 것, 그런 건 의사라는 고난도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입원한 환자이며, 정신과 모니터링을 받고있는 환자인데 내게 본인의 정신과 투병 이야기를 하는 게 직업윤리상 옳은 일이었을까? 물론 들어주는 나는 괜찮다. 익숙한 일이며, 들어주면 그만이지 뭐. 다만 그냥 내가 의과 실습생이었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이 학생을 위하여 기도했다. 아픈 마음이 다시 온전해지는 날이 오기를,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좋은 의사가 되어 행복하기를 말이다.


'일상사 다반사 (日常事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일상을 산다는 건 차(茶)를 마시고 밥(飯)을 먹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불교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차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출발한다는 말이다. 기약 없이 이 곳에서 보내는 나의 일상에서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같은 병실 내에 있는 중학생 아이가 써서 수줍게 건낸 편지다. 이 아이는 내가 좋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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